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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淸) 4 청나라(淸) 4 청나라는 강희제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와 건륭제 시기에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청나라는 무려 1,3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를 다스렸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삼대에 이은 청나라의 이 전성기를 강건성세(康乾盛世)라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오랫도앙 지속된 평화와 안정으로 인하여 결국 건륭제 말기에는 점차 쇠퇴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두고 서양 학자들은 '오후의 태양'과 같았다고 평했습니다. 즉 더없이 밝게 빛나지만 점차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강희제가 1722년 겨울에 사망하자 강희제의 네 번째 아들인 옹친왕(雍親王) 윤진이 옹정제로 즉위했습니다. 강희제 말기에는 강희제 사후 황제의 자리를 두고 윤진을 비롯하여 형제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 2023. 5. 24.
청나라(淸) 3 - 청나라(淸) 3 - 강희제의 통치 청나라는 순치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강희제의 재위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강희제는 8살의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랐는데 당시 황제의 친척이자 유력한 권력자였던 도르곤의 권력 독점을 우려했던 순치제는 4명의 보정대신(허셔리 소닌, 구왈갸 오보이, 나라 숙사하, 노후루 어빌운)을 임명하여 강희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4명의 보정대신들은 황실과 핏줄로 묶여있지도 않았으며 서로를 견제하며 황권을 상대적으로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보정대신들 중 가장 강력했던 구왈갸 오보이가 점차 권력을 장악하며 황제에게 불손하게 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오보이는 역모를 꾸밀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개인적인 오만함과 정치적 보수성은 어린 황.. 2023. 5. 23.
청나라(淸) 2 - 청나라(淸) 2 후금의 명나라 정복 홍타이지는 1643년 9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후 제대로 된 승계 제도가 없던 만주족들은 귀족 회의를 통하영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당시 홍타이지 사후 가장 유력한 권력자들은 홍타이지의 아들이었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와 홍타이지의 이복형제 도르곤이었습니다. 이들은 직접적인 충돌을 꺼려했고, 결국 2명 모두 황위를 포기하며 홍타이지의 5살짜리 아들을 대신 새로운 황제로 뽑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가 바로 청나라의 2대 홍제 순치제입니다. 이후 도르곤은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으로 통치하였고 청나라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부상했습니다. 그와중에 명나라 조정은 내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농민 봉기들이 끊없이 일어나고 고질적인 재정난이 겹치며 끊임.. 2023. 5. 23.
청나라(淸) 1 - 청나라(淸) (1636년 4월~1912년 2월 12일) 만주족의 명나라 정벌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은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에 의하여 건국되었습니다. 누르하치는 군소 여진족들의 수장입니다. 누르하치는 이후 명나라의 명령 하에 주변의 여진 부족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화들을 잠재우는 데에 뛰어난 능역을 보여주었고 이후 1616년 즈음이 되자 모든 인근 여진족들을 통합하며 만리장성 외부 진족의 절대적인 지배자로 떠올랐습니다. 기세 등등해진 누르하치는 예전에 여진족이 세웠던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대금으로 정하고 연호를 천명(天命)으로 정한 후 스스로를 총영명한(聰英明汗) 간단히 말하여 여진족의 대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2년후, 누르하치는 칠대한을 선포했고 여전히 자신의 지배권 밖에 있었던 여진족들까.. 2023. 5. 22.